꾼들이 머문 자리

낚시 이모저모

가을 빛이 반짝이는 낚시터 풍경

소석(笑石) 2011. 9. 20. 13:30

 

   ▲ 장흥 가학지 전경

 

초가을 늦더위가 30도를 오르내리더니

어느새 찾아온 가을빛과 바람에 질긴 끈을 놓아 버리고,

우리 주변의 자연이 가을빛으로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가을빛이 머무는  저수지는

올 여름 내린 폭우를 이겨내고 잘 자라준 벼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해 주고,

점차적으로 바닥을 드러 내 가고 있는 자리에

가을 붕어의 힘찬 손맛을 보기위해 찾아 든 낚시꾼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 가을 꾼들의 향연 

 

수면에 반짝이는 가을빛을 바라보다  눈이 피로한 꾼은

물이 빠져나간 저수지 바닥에 그늘 막을 쳐 놓고 

막걸리 한 사발에 농주가(農酒歌)가 아닌 어주가(漁酒歌)를 흥얼거리다 

 

그마져도 지쳤는지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뭉게구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 가을 빛이 쏟아지는 한 낮의 낚시터

 

그런가 하면 이 곳은 골 자리로

배수로 인한 수위가 낮아지면서 그동안 물 속에 잠겨있던 새로운 포인트가 드러난

만수위 때 공략이 불가능 했던 배수기의 새로운 유력한 포인트 인데

 

오늘 이 꾼은 모처럼의 출조에 포인트 선정은 잘 한 것 같은데

바지를 무릎까지 올리고 어떤 행동을 할 지 궁금합니다. 

 

   ▲ 배수기에 나타난 골자리 

 

이 꾼들은 장박(長泊)낚시에 들어갈 모양입니다.

저수지 둑 위에 텐트와 차양 막을 치고

거기다 플래카드도 걸어 놓았습니다.

 

장박낚시는 모든 꾼들의 소망이 아닌가 싶습니다.

감질 나는 하루나 1박2일 정도의 낚시보다는 3박4일 이상 일정을 잡고

잠시 일상을 벗어나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저수지 둑 위의 환상적인 모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돕니다.

돼지 앞다리 살에 양파, 대파, 마늘, 생강, 된장 등을 넣고

푹 삶아낸 돼지고기 수육을 썰고 있습니다.

 

돼지고기는 불에 구어서 먹는 삼겹살 보다는 앞다리 살이나 사태 살을

푹 삶아 기름기를 쫙 뺀 수육을 신 김치에 싸먹으면 정말 꿀맛 입니다.

거기에다 소주 한잔 곁들이면 카~ 금상첨화 입니다.

 

   ▲ 낚시는 뒷전이고 이 맛에 온다는 꾼들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한 입에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썰어서

신김치, 마늘, 고추, 양파, 된장을 넣고

간장에 조린 뽕나무 잎과 깻잎으로 싸서 먹는 수육 보쌈은

 

중국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베이징의 정통 요리로

명나라 때 만들어 졌다는 바이주러우(돼지고기 수육)보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더 맛있을 것 같습니다. 

 

   ▲ 김삿갓이 수육 드시려 현신 하셨습니다 그려

 

왕잠자리 한 쌍이 낚시대 주변을 비행 하다가

한 마리는 자취를 감추고 낚시대 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자리 짝짓기를 무심히 보고 지나치지만

하트 모양의 형태로 짝짓기를 한다고 합니다.

 

암놈의 생식기는 10개의 배마디 중에서 아홉째 마디에 있고,

수놈의 교미기는 2개로 9절에 생식기가 있고,

그것 말고도 2~3절에 부생식기가 있다고 합니다.

 

암컷이 몸을 뒤집어서(앞뒤 반대 방향으로) 여섯 개의 다리로 수놈의 배를 거머쥐고

자기 몸을 둥글게 구부려 생식기를 수컷 가슴팍에 있는 부생식기에 갖다 대고,

거기에 붙여 둔 정자덩어리를 받아 간다고 합니다.

그것이 짝짓기로, 아직도 수컷에 목에 잡혀있으니 이 때의 자세가 하트 모양을 한다고 합니다. 

 

   ▲ 낚시대에 내려 앉은 왕잠자리

 

가을 들녘도 빛깔을 바꾸고 있습니다.

파란 들판에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벼 이삭도 뜨거운 햇볕을 받아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황금색 빛을 발산하고 있는 요즘

 

저수지 둑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억새가

자주색 이삭을 꼿꼿하게 세우고 은빛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 꽃의 생김새와 어울리지않게 꽃말이 "친절, 은퇴"인 억새

 

가을 해가 지고 있습니다.

오후 내내 청명한 하늘 아래 화창한 햇살을 받으며 빛났던 은빛 억새꽃이

은은한 석양빛을 띠면서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이 되면 꾼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오늘 밤 대물과 상면할 수 있는 시간이 가까워 졌기 때문입니다.

 

낮 동안 수심이 깊은 저수지 중심부에 은신하고 있던 씨알 굵은 붕어들이

어스름이 깔리면 새우나 물벼룩 등 수서생물이 자생하고 있는 물가로

움직일 때를 노리기 위해서 입니다.

 

   ▲ 은은한 석양 빛이 물들고 있는 은빛의 억새꽃

 

저수지에 지척을 분간 할 수 없는 밤이 찾아왔습니다.

오늘 저녁의 희망을 오로지 수면을 밝히고 있는 캐미 라이트에 의지한 채 

최대한 불필요한 동작과 소음을 줄이고, 심지어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캐미 불빛을 응시한 채 미세한 움직임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보이지 않는 물 속의 붕어와 사투를 벌입니다.

 

   ▲ 칠흑 같은 어둠속을 밝히는 수면위의 캐미 라이트 

 

초저녁부터 간간히 뿌리던 비는 멈추고,

밤은 삼경(11~1시)을 지나 사경(1~3시)으로 가고 있습니다.

삼경 무렵부터 불어대던 강한 북서풍이 찬 공기를 몰고 오는지 제법 쌀쌀합니다.

 

지난 밤 잔챙이 붕어 몇 마리에 실망한 나머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녘 대물 회유시간 대에 일어났으나

정면에서 불어오는 강한 북서풍이라는 복병을 만났습니다.  

 

   ▲ 강한 밤바람에 출렁이는 수면 

 

꾼들이여 잠에서 깨어나라!

새벽 여명은 밝아오는데 텐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꾼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바람에 출렁이는 물결 소리만 깊은 정적을 깨우고 있습니다.

 

오늘을 마감하고 잠들었던 대지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운 새벽하늘이 조금씩 열리면서 깨어나고 있어

얼마 안 있으면 은빛 찬란한 오늘을 맞게 되겠지요. 

 

   ▲ 어둠 속에서 깨어나고 있는 오늘

 

새벽에서 깨어난 억새 이삭이 기지개를 펴고 있습니다.

인근 천관산 정상의 억새가 기암괴석과 함께 장관을 이룰 때가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절정을 맞는 단풍과 달리 은빛으로 넘실대는 억새는

뺨에 와 닫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지는 초겨울 까지도 일렁임을 멈추지 않아

가을의 참맛을 느끼게 해 줍니다. 

 

   ▲ 새벽녘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서있는 억새 이삭

 

금파만경(金波萬頃, 황금물결 이는 들판)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기대 했는데,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던 벼 이삭이 휘몰이 장단에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새벽잠에서 막 깨어난 꾼들의 마음도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벼 이삭과 같이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심난하기는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 황금 물결이 출렁이는 들판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꾼들이 마음을 정했는지 하나 둘 자리를 뜨고,

 

마지막 남은 꾼이 1박2일 동안 물가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입질이 들어올까 하고 긴긴밤을 잠 못 이루며 지켰던

낚시대를 주섬주섬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 

 

   ▲ 일출을 뒤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