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에는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의 등급이 있다.
조졸(釣卒), 조사(釣肆), 조마(釣痲), 조상(釣孀), 조포(釣怖), 조차(釣且), 조궁(釣窮)
을 거쳐 남작(藍作), 자작(慈作), 후작(厚作), 공작(空作),
그리고 조성(釣聖)과 조선(釣仙)에 이르는 것이 이른바 구조오작위이다.
즉, 조졸, 조사, 조마, 조상, 조포, 조차, 조궁, 조성, 조선이 구조(九釣)이고,
남작, 자작, 백작, 후작, 공작이 오작위(五作尉)에 속하는 것이다.
▲ 남원 요천 세전보
조졸(釣卒)
초보자를 일컷는 말로서 한 마디로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가
아직 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한 단계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빵점이다.
낚시대를 들고 고기만 잡으면 무조건 낚시꾼 인줄 아는 것도 바로 이 부류에 속한다.
고기를 잡을 수 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건 말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 마리도 잡히지 않으면 신경질이 나서 낚시질을 때려치우고 술부터 찾는다.
그리고 취하면 그제서야 분이 풀려서 고성방가를 시작한다.
술을 못 마시면 집에 가서 까지도 그 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다.
이 단계에서 가장 낚시줄이 많이 엉키거나 바늘이 옷에 걸리거나
초리대 끝이 망가져 버리는 수가 많은데,
마음가짐에 따라 낚시대나 낚시줄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
동작 여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반드시 낚시대나 낚시줄도 제멋대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몇 번 낚시질을 다니고, 그러다가 재미가 붙기 시작해서 몇번 좋은 수확을 거두거나
대어라도 두어 마리 낚게 되면 사람이 차츰 달라지기 시작한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게 되고,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도 제법 신경을 쓰게 될 뿐만 아니라
공연히 목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히 고상하고 낭만적인 존재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조사(釣肆)
이 때가 되면 방자할 사(肆)가 붙어서 조사(釣士)가 아닌 조사(釣肆)로 한 등급이 올라가는데
낚시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듯
어디서든 낚시얘기만 나오면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입질이 오다"라고 말해도 될 것을 반드시 "어신이 온다"라고 말하고,
"고기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라고 말해도 될 것을
"조황이 별로 좋지 않다" 라고 말하는 단계도 바로 이 단계 이며,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단계이다.
하지만 옆에 앉은 사람이 자기가 잡은 것보다 큰 놈을 올리거나
수확이 잦을 경우는 대번에 의기소침해져 버리는 것도 바로 이 단계다.
그리고 이 단계만 거치게 되면 비로소 낚시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그래서 조마(釣痲), 조상(釣孀) 등의 단계로 이어져 가기 시작하는데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 장흥 지정지의 각시거미
조마(釣痲) - 홍역할 마(痲)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어디서든 찌가 보여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도 낚시질을 가지 않으면 몸살이 날 지경이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나 연휴 때에 친구가 결혼을 하면 정강이라도 한 대 걷어차 버리고 싶을 정도다.
물론 적당한 구실을 붙여 되도록 식장에 참석하지 않고 낚시질을 간다.
결근도 불사한다.
조상(釣孀) - 과부 상(孀)
마누라쟁이를 일요 과부로 만드는 것은 약과다.
격일 과부로 만드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사업조차 낚시 때문에 시들해져 버리고, 급기야는 잦은 부부 싸움 끝에 이혼하는 사례까지도 있다.
조포(釣怖) - 두려워할 포(怖)
낚시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는 단계.
이쯤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절제를 시작한다.
취미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보려고도 노력한다.
낚시 때문에 인생 전체를 망쳐 버릴 듯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조차(釣且) - 또 차(且)
다시 낚시를 시작하는 단계.
행동도 마음가짐도 무르익어 있다.
고기가 잡히건 잡히지 않건 상관하지 않는다.
낚시대를 드리워 놓기만 하면 고기보다 세월이 먼저 와서 낚시 바늘에 닿아 있다.
그러나 아직 낚을 수 없는 단계.
고기는 방생해 줄 수 있지만 자신은 방생해 주지 못하는 단계.
조궁(釣窮) - 다할 궁(窮)
이제부터는 낚시를 통해서 도를 닦기 시작하는 단계.
▲ 고흥 해창만 부들밭 둠벙
남작(藍作) - 바구니 남(藍), 지을 작(作)
마음 안에 큰 바구니를 만들고.
자작(慈作) - 사랑 자(慈)
마음 안에 자비를 만들고.
백작(百作) - 일백 백(百)
마음 안에 백사람의 어른을 만들고.
후작(厚作) - 두터울 후(厚)
마음 안에 후함을 만들고.
공작(空作) - 빌 공(空)
나중에는 모든 것을 다 비운다.
그러면 비로소 조성(釣聖)이나 조선(釣仙)이 되는 바,
달리 말하자면 도인(道人)이나 신선이 되는 것이다.
☞ 이 글은 소설가 이외수씨의 글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 장흥 지정지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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