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들이 머문 자리

일상의 모습과 글 71

갈대 수로에 한 점이 되어

쏴~ 서걱서걱 서걱서걱 수로 너머 호수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에 흔들리는 스산한 갈대의 울음소리, 호수의 물결과 함께 갈대 사이를 바람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서로를 부둥켜 안은채 메마른 몸을 비벼대며 울음을 토해낸다. 호수 연안을 따라 자생하고 있는 성인 키보다 더 큰 갈대가 만들어 준 수로에 한 점이 되어 두 뺨을 스쳐가는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오랜만에 맞는 오늘의 출조에서 편안함을 맛본다.

새벽 안개와 커피

꼬끼오~ 컹! 컹! 컹! 새벽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번갈아 들리는 것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람 사는 동네가 있나 보다. 비몽사몽간에 졸린 눈을 떠보니 짙은 안개 속에서 새벽이 어둠을 가르고 깨어나고 있고, 싸늘한 한기가 온몸으로 퍼진다. 컵라면을 먹을까? 커피를 마실까? 분위기로 봐서는 커피가 더 운치가 있을 것 같다. 버너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일회용 컵에 믹스 커피를 넣고 나서 물이 끓는 잠깐 동안 이 조용하고 평온함이 주는 시간을 즐겨 본다. 마침내 커피가 완성되고, 달달하면서 구수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따끈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지면서 지난밤을 꼬박 세운 피곤함이 눈 녹듯이 녹아든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김과 어우러진 진한 커피 향이 안..

만추의 길목에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지났으니 가을은 더욱 깊어져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겨울의 문턱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초록빛 사이로 비추는 가을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가을꽃들은 끊임없이 벌과 나비들을 불러들이고 있으며, 나뭇잎들은 마지막 옷을 바꿔 입느라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고 있다. 가을에 유난히 보라색 꽃이 많은 것은 꽃의 색깔은 꽃가루받이 매개자와 깊은 관계가 있는데 나비는 분홍이나 흰색 등 파스텔톤을, 벌은 노랑과 청색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 가을은 나비보다 벌이 주요 매개자로 청색 계통의 보라색 꽃이 많은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한다. 오는가 하면 금방 가는 계절 가을이 깊어 갈수록 산에서는 열매가 꽃이요, 새들의 겨울철 좋은 비상식량이다. 가을산이 하루가 다르게 물들어 갈수록 열매도 가을산..

백야도 석양의 실루엣

석양 무렵 하늘도,산도, 바다도 붉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석양에 투영된 두 연인의 아름다운 실루엣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여수 백야도 끝자락에 자리한 백야도 등대, 해양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예전에 비해 볼거리리가 다양해 져서 가족과 함께 가볼만 하다. 가는 시간이 늦은 오후라면 등대 오른쪽으로 난 해안 산책길을 내려가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아래 갯바위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도 있다.

보랏빛 저녁 노을

오월 어느 날 석양 무렵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늘 똑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오늘은 낚시대를 벗삼아 물가에 앉아 있다. 무심한 해는 제 갈길을 가기 위해 뉘엿뉘엿 서산으로 기울자 주위가 천천히 주홍빛으로 물들어 가더니 하늘도 산도 물도 보랏빛으로 물들어 어디를봐도 아름다운 저녁 노을의 데칼코마니 풍경이 나를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