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들이 머문 자리

행복이야기

깨달음은 현실보다 늦게 찾아온다

소석(笑石) 2013. 1. 2. 20:18

다육이 라벤다힐의 붉은 꽃봉오리가 곧 터뜨릴 것 같습니다.

지난해 겨울이 시작되면서 꽃대가 올라오고, 꽃봉오리가 붉은 빛을 띠고 나서

한 달 여를 아침마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바라보았지만 피어날 기색이 없더니

해가 되자마자 새 희망의 선물을 주려는 듯 합니다.

 

이렇게 한낱 미물인 꽃도 때가 되어 피우지를 않으면 기다려지는데

부모가 자식을 향한 마음은 어떠할까?

 

자식은 세상일에 쫒기며 살다보니 부모는 언제고 내가 원하기만 하면

볼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삽니다.

 

하지만 부모는 자식이 50이 넘고, 육십을 넘어 손자가 생겨도 항상 어린애로 보이고,

날씨가 추우면 옷은 따뜻하게 입고 다니는지,

더우면 더위를 먹고 지치지 않았는지,

자동차 사고 방송이 나오면 저 차에 타고 있지 않은지,

노심초사 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그러다 안부전화라도 오는 날이면

못 부른 노래를 흥얼거리며 보내곤 하는데

이러한 즐거움 말고 또 다른 즐거움이 있을까?

 

   ▲ 색깔이 고혹적이며 앙증맞은 "라벤다힐"

 

오늘은 임진년 마지막 날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TV를 보다가

얼마 전 타계한 신바람 박사 황수관 박사의 마지막 강의에서

"처마 밑에 앉아 늙은 아버지와 아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눈시울을 붉혔던 내용을 올려 봅니다. 

 

어는 아침 늙은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있다가 아들에게 물었다.

"애야, 저기 나무 가지에 있는 게 무어냐?"

"까치에요"

"응, 그래..."

 

얼마 있다 아버지가 또 물었다.

"애야, 저기 나무 가지에 뭐가 있지?"

그러자 아들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까치라니까요!"

"으응..."

 

그러고 나서 또 얼마가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물었다.

"애야, 저기 나무 가지에 뭐가 앉아 있지?"

그러자 아들은 버럭 화를 내며

"아이참, 까치라고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들으시겠어요! 내참...까치라 구요 까치!"

아들의 성화에 겸연쩍어진 아버지는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맞아, 까치라고 했었지..."

 

하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불끄러미 바라보다

방으로 들어가 때가 묻고 찢어진 일기장을 가지고 나왔다.

일기장을 펴서 아들에게 주며 읽어 보라고 했다.

일기장을 보니 자기가 3살 어린애때 기록한 아버지의 이야기 였다.

 

오늘 아들 녀석이 마루에서 놀다가 마당 감나무에 앉은 까치를 보고 내게 물었다.

"아빠, 저게 뭐양?"

"응, 까치라는 새란다."

"까치~있어!"

근데 새 이름이 뭐양"

"까치라는 새란다~"

"응, 있어!"

 

이제 막 말을 배운 아들 녀석은 그 후로도 23번이나 내게 똑같은 걸 물어보았다.

나는 아들 녀석이 똑같은 말을 하는 게 너무 귀엽고 예뻐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하루 종일 아들 녀석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금방이라도 꽃봉오리를 터뜨릴 것 같은 "라벤다힐"

 

세상일은 왜 이렇게 바쁜지,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안주하다 보니

부모님은 영원히 우리 곁에 건강한 모습으로 계실 것 이라고

마음으로만 기억하고 살고 있지만,

 

사실은 외로움 속에서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살아 계실 때 잘 해 드려야 한다는 것을 잊고 살고 있지 않는지를

하루에 한번쯤은 되돌아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