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이 조금씩 물들어 가는 것을 시샘이나 하는 듯이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지만 어디를 가고 싶은 이 가을에
나만의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예정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전라도(全羅道)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으로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나주국제농업박람회와
전주비빔밥 축제의 멋과 맛을 찾아 갑니다.
▲ 전주8미 어린일비빔밥 체험 및 시식 행사
천년고도 목사골 나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러브 스토리가 생겨난 곳으로,
왕건이 완산천 샘터에서 17세 연하인 버들낭자로 부터
"버들 잎 띠운 물" 한 바가지를 얻어먹고 짧은 만남이었지만
열렬한 사랑의 열매를 맺은 버들 낭자는
고려 2대왕 혜종이 될 "무"를 잉태하게 되고 나중에 장황황후가 되었습니다.
▲ 천연 염색관의 베짜는 여인
전주와 함께 호남의 도읍지였으며 영산강 물줄기를 따라
마한 문화의 중심이었던 나주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농업박람회에
평일 아침이지만 전시관 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붐비고 있습니다.
▲ 초가지붕 위에 여러 종류의 박이 열린 농업예술관
10개의 전시관 중 처음으로 실물을 보는 아열대 식물원의 극락조화(極樂鳥花)와
농업예술관의 용과(龍果)가 가장 눈길을 끕니다.
극락조화는 남아프리카가 원산으로,
꽃잎의 형태가 파푸뉴기니 등 열대지방에서 서식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 극락조를 닮았다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 극락조화
용과는 중앙아메리카가 원산인 선인장 열매로,
열매의 모습이 마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과 닮았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고, 영어로는 파타야(Pitaya)라고 부르며,
우리나라 제주도에서 특산품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 용과
이제는 나주의 대표음식인 나주 곰탕을 맛 볼 시간으로
국제행사장이라 많은 기대를 하고 갔는데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그런지
나주 곰탕의 진정한 맛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 바다의 갯벌에서 사는 게를 만났습니다.
다음 여행지인 서산 8경의 하나인 도비산 저녁노을을 보러 갑니다.
"도비산의 저녁노을이 천수만 바닷물에 되비쳐
하늘에 오색 노을을 꽃피게 하는 그림 같은 모습은 황홀하기 까지 하고,
주위의 구름까지도 주황빛으로 채색돼 아름다움을 더 한다고 합니다."
해가 넘어가려면 한 뼘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시각 서산 시청 앞에 도착하니
해가 지는 곳이라는 서산이 "해 뜨는 서산, 행복한 도시"라는
역발상 캐치프레이즈가 무척이나 인상적 이며,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 같습니다.
▲ 서산시청 앞 솔밭
저녁노을을 보려면 마음이 급하기만 한데
고개를 넘고 넘어도 서해 바다는 보이지 않고 주위가 어둑어둑해 질 무렵
깜깜한 밤바다가 나타나더니 이제야 뭐하려 왔냐고 합니다.
▲ 전주로 내려가는 길에 만난 아쉬웠던 석양
오늘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내일의 전주권 여행을 위해
전주 한옥마을 에서 숙박할 예정으로 밤길을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어서 한옥 숙박체험은 하지 못했습니다.
전주는 900년 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수도이자
조선왕조 500년을 꽃피운 탯자리로 두개 왕조를 꽃피운 역사의 중심지였으며,
지나온 천년 역사의 저력만큼 전주는 전통생활양식의 근간인
한옥, 한식, 한지, 한국 판소리 등 가장 한국적인 전통문화를 담고 있는 도시 입니다.
▲ 전통문화가 숨쉬고 있는 한옥
전주비빔밥 축제가 열리고 있는 한옥마을은
일제 강점기 때 일제가 양곡수송을 위해 전주 부성을 허물고 도로를 낸뒤
일본 상인들이 성곽으로 들어와 상권을 형성하자 이에 반발하여
이곳에 한옥을 지어 살기 시작한 의미가 깊은 한옥마을로
700여 채의 한옥이 빼곡히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 한옥마을 배치도
그리고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이성계 어진과 어진 박물관, 전주 이씨의 시조 위패를 모신 조경묘,
조선왕조의 역사를 보존하는 전주사고가 설치 되어있는 경기전이 있고,
▲ 경기전 앞 광장에서 비밤밥을 먹고 있는 유치원생들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 처형당한 풍남문이 있던 자리에
1914년 건립한 서양식 근대 건축물로 서울 명동성당과 같은 로마네스크 양식인
전동성당이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는 전주 향교,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경 개선 길에 들려 잔치를 베풀었다는 오목대 등
중요 문화재와 문화시설이 산재해 있는 독특한 생활문화 공간입니다.
▲ 전동 성당
다음날 아침 또 하나의 전주 대표음식인 담백하고 시원한 전주콩나물국밥을 먹고
전주비빔밥 축제가 열리고 있는 한옥마을로 갑니다.
축제가 열리고 있는 태조로 등은 많은 음식점과 공예품점 등이 들어서 있어
건물만 한옥이지 여는 관광지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골목으로 들어서자 이곳에도 군데군데 oo당, oo원 등 간판이 즐비한 가운데서도
까만 기와장이 가지런히 놓인 담장 너머로 보이는 포근한 마당과 대청마루,
선이 아름다운 지붕과 처마 등 한옥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 한옥 처마 위로 익어가는 감
그렇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거주민은 줄어들고,
그 자리에 게스트하우스, 음식점, 카페, 문화 공간 등으로 탈바꿈 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큰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 한옥마을의 꼴불견
한옥마을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문이 열린 집은 들어가서 대청마루에
앉아보기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저 많은 비빔밥 식당 중에서
어디를 가야할지 망설여집니다.
▲ 2층 한옥으로 된 비빔밥 식당
한국의 대표음식이며 세계인이 함께 먹는 전주비빔밥은
현재 전주의 비빔밥 식당 중 가장 오래된 곳은 한국집 으로,
1953년에 비빔밥집을 내었는데 개업당시의 남문시장 좌판에서 파는 비빔밥은
나물에 날달걀을 넣고 비비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고급화 하여 그 종류도 다양해 졌다고 합니다.
▲ 오방색 비빔밥
어째든 사람이 가장 붐비는 식당으로 들어가
오방색(청적황백흑)으로 품격을 갖춘 원조 전주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전주 인근에 있는 마이산으로 향합니다.
▲ 전주 비빔밥 상차림
진안에 있는 마이산 또한 태조 이성계와 관련된 전설이 많이 있는 곳으로
이성계가 마이산을 찾아 백일기도를 드릴 때
이곳의 물이 은처럼 맑다고 하여 절 이름을 은수사라 이름을 지었고
기도를 마친 뒤 증표로 심었다는 청실배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태종이 진안을 지나가다 태조 이성계가 지은 시를 보고,
두 봉우리가 마치 말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마이산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 마이산 탑사와 돌탑
마이산은 1억 년 전 백악기에 호수가 수면위로 솟아
자갈, 모래, 진흙 등 여러 물질이 쌓이고 굳어서 된 역암 층으로 된 산으로
신비함을 주는 두 봉과 약 백 년 전 이갑용 처사가 천지음양의 이치와
팔도진법을 적용하여 돌을 하나하나씩 쌓아 올렸다는 80여개의 돌탑으로도 유명합니다.
▲ 천지탑과 이를 호위하고 있는 오방탑
마이산이 말의 귀처럼 생겼다고 하지만
드물게 산골짜기에 만들어진 작은 호수 탑영제 에서 바라본 마이산은
아기를 잉태한 만삭의 여인이 누워 있는 듯한 형상입니다.
▲ 탑영제에서 바라본 마이산
10월 중순이라 그런지 알록달록한 세상은 아니지만
조금씩 물들어가는 마이산의 가을 정취를 호젓하게 맛보고
죽향의 고장 담양으로 내려갑니다.
▲ 붉게 물든 담쟁이덩굴
담양에 도착하니 어느새 가을 황혼이 조용히 깃들어 가고 있고
메타세콰이아 길 언덕에 낮 동안 은빛으로 빛나던 억새꽃이
저녁노을에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은빛 억새꽃
대나무 고장답게 죽녹원, 대나무 생태공원, 죽물박물관, 관방제림 등
구경 할 곳은 많은데 어둠이 내리고 있어 볼거리는 포기하고,
담양까지 왔는데 떡갈비를 안 먹고 가면 후회 할 것 같습니다.
떡갈비는 원래 임금님이 먹던 음식으로
임금이 체통 없이 손에 들고 뜯어먹기가 곤란해
갈비 살을 다져서 인절미처럼 치대서 만든 것이 떡갈비라고 합니다.
▲ 담양 떡갈비
1박2일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떡갈비 식당을 찾아서 들어서니
평일 초저녁이라 손님은 많지 않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떡갈비를 시키고 나서
차림표를 보니 "50년 전통의 덕인 떡갈비 27,000원" 입니다.
가격은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만 깔끔한 반찬과 함께 나온 떡갈비는
쫀득쫀득한 육질과 양념이 조화를 이루어 다른 지역의 맛과 완전히 다른 맛에
담양 맛집에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 담양떡갈비 상차림
1박2일 동안 남녘의 소문난 곳 몇 군데를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뭔가 부족하고 아쉬움에 미련이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재미가 쏠쏠했던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될 여행이었습니다.
▲ 그래도 단풍은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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