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행기

고흥호에 서리가 하얗게 내리던 날

소석(笑石) 2015. 1. 14. 10:31

 

   ▲ 고흥호 상류 수로

 

오늘은 을미년 첫 출조 날,

겨울 날씨가 얼마나 좋을까 마는 

한겨울인 1월에 물 낚시를 할 수 있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1월 10일 새벽 6시경 고흥호로 출발합니다.

 

새벽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고흥호 인공습지에 도착하니  

하루 먼저 와 있는 붕어사랑님이 전혀 입질이 없다면서

어제 바람 때문에 철수한 고흥호 상류를 둘러보라고 합니다.

 

한참을 달려 고흥호 상류에 다다르자

붉게 물들어 가던 동쪽 하늘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 고흥호 상류 수로의 일출

 

그런데 웬일 입니까?

전혀 예상하지도 않았던 둠벙님이

조금 전에 도착했다면서 환하게 웃으시며 나타나자

오랜만의 해후에 소란스럽게 떠들었는지

 

밭에서 먹이를 쪼아 먹고 있던 물오리 들이

난데없이 나타난 불청객들에게 놀라

물속으로 뛰어 들어 달아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 달아나는 물오리 떼들

 

꼬르륵~

꼬르륵~

배꼽시계가 계속 울립니다.

 

그러고 보니

오전 10시가 넘도록 아침을 먹지 않았으니

배고픔을 알리는 배꼽시계가 요란한 소리를 낼 만도 합니다. 

 

   ▲ 금강산도 식후경

 

낚시대 6대 편성을 마치고,

아침밥도 먹은 뒤라

갑자기 쏟아지는 졸음을 쫒아 내고 있는데

수로 건너편에 있는 낚시꾼 행동이 이상합니다.

 

대어가 걸린 것 같습니다.

활처럼 휘어진 낚시대를 꽉 부여잡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한참을 버티더니

빈 낚시대가 뒤로 벌렁 넘어 갑니다.

 

꽤 큰 잉어를 걸었는데

낚시 줄이 버티지를 못하고

결국은 끊어지고 만 것 같습니다.  

 

   ▲ 허탈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현지인

 

꾼들의 로망, 

대물을 낚고 싶은 것은 꾼들의 영원한 로망으로

낚시대가 부러져도 좋으니 

걸리기만 걸려라 하면서 의욕을 불태웁니다.

 

꿈은 꾸는 자의 것이라고 하는데

잉어라도 좋다 하면서

손가락 두개로 V자를 지어 보여줍니다.   

 

   ▲ 승리의 V자를 만들어 보이는 다혜콩콩님 

 

   ▲ 노장의 투혼을 발휘하는 둠병님

 

겨울 속의 봄입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겨울 햇살이

봄 햇살처럼 따사롭기 까지 합니다.

 

그런데 입질은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기다려 보지만

영 잼뱅이 입니다.

 

   ▲ 보석처럼 빛나는 겨울 햇살

 

제방 언덕배기에

늦가을에 싹을 틔어 겨우내 조금씩 자라다

봄이 되면 우리들의 입맛을 돗구는 냉이가

땅에 바짝 엎드려 추위를 이겨 내고 있습니다. 

 

   ▲ 겨울에도 자라는 냉이

 

하루 종일 전혀 입질도 없이

무료한 시간은 오전에 이어 오후에도 계속되자

오늘 밤을 심히 걱정하고 있는데

 

겨울 햇살이 점점 약해지는 오후 4시경

붕어사랑님이 처음으로 7치급 붕어를 상면하더니

간간히 손맛을 보고 있어 

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오랜만에 낚은 붕어

 

오후 늦은 시각

야생초님과 아쭈리님이 도착하자

회원 7명이 모였습니다.

 

날씨가 많이 풀렸다고는 하나

바람 끝이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도 좋아를 외치며

이렇게 많은 회원들이 출조 한 것을 보면

그 열정 하나는 알아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후 늦은 시각이 되자

꾼들로 북적거리던 낚시터가 

설렁합니다.

 

낮 낚시를 하던 꾼들은 떠나고,

밤낚시를 즐기는 꾼들만

파라솔 텐트를 설치하고 남았습니다. 

 

   ▲ 왠지 을씨년스러운 기분

 

하루 종일 입질도 없는

무료한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햇살도 약해지는 오후 늦은 시간입니다.

 

오후 내내 보이지 않던 물오리들이

짝을 지어 나타난 것을 보니

저녁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 물오리들의 저녁 시간

 

햇님이 서산에 걸려 있는 6시경

3칸대 찌가 꼬물거리더니 

쭉~ 올라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겨울붕어가

물을 박차고 나와 석양빛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6치급 붕어

 

저녁노을이 해를 삼켜 버리자

도저히 말로는 형언 할 수 없는

아름다운 붉은 노을 향연 속으로 빠져 듭니다.

 

하늘도 산도 물도 

마치 붉은 색채의 마술에 걸린 것처럼

기이한 느낌이 듭니다. 

 

   ▲ 해를 삼켜버린 저녁 노을

 

저녁을 먹고 나니 

그 아름답던 저녁노을도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 밤은 어떤 모습일까?

과연 수로는 나에게 씨알 좋은 겨울 붕어를 내어 줄려는지

자못 궁금합니다.

 

   ▲ 싸늘하게 식어가는 저녁 노을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 밤 답지 않게

하늘에는 수많은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바람 한 점 없는 수면 위에는 캐미불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밤입니다.

 

거기다 어둠 속에서

앙탈과 몸부림의 짜릿한 맛을 느끼며

물속에서 건져 올린 녀석과 이렇게 상면도 했으니

금상첨화 입니다. 

 

   ▲ 어둠을 뚷고 모습을 드러낸 겨울 붕어

 

"붕어가 날개를 달았나"

어둠 속에서 잔챙이와 씨름을 하더니

낚시터에 새로운 신조어가 생겼습니다.

 

추위도 이기고,

출출한 배도 채우기 위해

야식을 먹고 이 밤을 즐기자고 합니다. 

 

   ▲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야식

 

밤 11시 30분경

수로 연안 쪽으로 살얼음이 얼고 있어

잠자리에 들려고 텐트로 가는데

동쪽 하늘에 하현달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자주 볼 수 없는

하현달이 뜨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 하현달

 

아침 8시경

침낭에서 나와 텐트 밖으로 나와 보니

서리가 눈처럼 내렸습니다.

 

거기다 밤사이에 수로가 얼어붙을 것에 대비해

어제 밤에 단속을 한다고 했는데

수로 연안 쪽으로는 얼음이 어는 바람에

낚시대 6대 중 4대 원줄이 얼음 속에 묻혔습니다. 

 

   ▲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파라솔 텐트 

 

   ▲ 겨울철의 낭만 모닥불도 피우고 

 

   ▲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는 꾼들 

 

   ▲ 낚시대에도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 오리들이 아침 먹어러 나왔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음 속에 묻히지 않은 2대의 낚시대에서

입질이 계속 들어옵니다.

 

   ▲ 얼음 위에서 팔딱거리는 겨울 붕어

 

서리가 내린 마늘밭 너머 

뿌옇게 연무가 낀 동쪽 하늘에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입질은 뚝 끊기고,

바람마저 불기 시작합니다.  

 

   ▲ 새벽 안개 사이로 해는 뜨고 

 

   ▲ 봄을 기다리는 나물 위에 핀 서리 꽃

 

   ▲ 늦은 아침을 먹는 중

 

적당히 앙탈도 부리고

여유 있는 손맛도 전해 주어야 하는데

오랜만에 나타난 그 녀석 

언제 온지도 모르게 날아와서 팔랑거립니다.  

 

   ▲ 잔챙이도 좋다는 아쭈리님

 

이 추위에

무얼 하러 나왔다가

이곳에 가쳤는가?

 

   ▲ 겨울 붕어들

 

겨울 낚시 낭만을 찾아서

이곳 까지 왔는데

원하는 것을 얻고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씨알은 주종이 5~6치급 이지만

붕어가 물고 안 물고는 지 마음이고

이 한겨울에 물 낚시를 즐기고 가는 것에 

만족할 따름입니다.  

 

   ▲ 가벼운 마음일까? 허전한 마음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