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행기

봄햇살 아래 태공들이 춤을 춘다

소석(笑石) 2013. 3. 12. 18:02

 

   ▲ 매화꽃이 핀 고흥 녹동 대분지     

 

봄이 오는듯 하다가 꽃샘추위에 깜짝 놀라 움츠러드는 것을 보니

기다리는 봄은 유난히도 길었던 겨울을 떨쳐내지 못하고

올 듯 말 듯 참 더디게 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봄은 왔는데 봄 같지 않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지난 3월 2일 꽃샘추위와 강풍 속에서 열렸던

계사년 첫 출조 모임인 시조회를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하고,

일주일을 기다림 속에서 보내다

고흥 녹동에 위치한 대분지로 금년도 첫 출조 길에 올랐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아침햇살을 머금은 자욱한 안개를 헤치며 가는 길은

지난해 11월 17일 납회를 마치고 4개월여 만에 출조라서 그런지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 아침 안개가 자욱한 녹동으로 가는 길

 

아직은 봄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자욱한 안개 속에 잠겨있는 저수지가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따사로운 봄 햇살을 가득 안고 날 반겨줍니다.

 

또한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수면은

우유를 풀어놓은 듯 희뿌연 물빛을 보이고 있어,  

말라비틀어진 수초 건너에 찌를 세우면

금방이라도 대물이 찌를 스멀스멀 밀어 올 릴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 안개 속에 잠겨있는 대분지

  

이곳은 물가를 따라 수초(1~2m)가 띠를 두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고,

규모는 작지만 수심이 수초 너머가 2~3m 정도나 되는

수심이 깊고 아담한 저수지로,

 

길게 띠를 두르고 있는 수초를 따라

짧은 대(2.0~2.8칸) 위주로 8대를 편성하고 나니

아침 햇살에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동풍이 불기 시작합니다.

 

   ▲ 수초가 잘 발달된 대분지

 

잔챙이들 등쌀에 8개의 찌가 춤을 춥니다.

평소보다 수초를 따라 대를 넓게 편성해서 그런지

춤을 추는 찌를 따라 두 눈은 좌우로 바쁘게 움직이고, 

머리도 좌우로 도리질 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잔챙이 입질 속에서

7치급 붕어가 수초 위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반갑다 붕어야"

 

   ▲ 수초 위로 모습을 드러낸 7치급 붕어

 

정오가 훨씬 지나 늦은 점심을 먹고 나니

봄기운 탓인지 포근해지는 햇살에 졸음은 쏟아지고,

이제는 잔챙이 입질도 뜸해지자

온몸에 봄이 오는 자연의 생기를 물신 느껴보기 위해 주변 산책에 나서봅니다.

 

입춘, 우수, 경칩이 지난 저수지 주변의 들과 산에는

순백의 매화꽃과 진한 향이 나의 눈과 코를 매료시키고 있는가 하면

연분홍빛 진달래가 앙상한 가지에 꽃눈을 틔우고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 연푸른 빛깔을 띤 청매화

 

 

   ▲ 순백의 빛깔을 띤 백매화 

 

   ▲ 연분홍빛 진달래

  

또한 땅속에서 솟아오른 달래, 냉이, 씀바귀 등 봄나물 들이 쑥쑥 올라와

겨울동안 잠들었던 대지에 신선한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우리들의 입맛을 돋구어 주고 있는가 하면

 

길가나 밭둑에 흔하게 자라고,

낮은 자세로 꽃을 피우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여 천대를 받고 있지만

혹한에서도 맨 먼저 봄을 알린다는 큰개불알꽃과 광대나물이

소중한 꽃을 피워 벌과 나비를 유인하고 있습니다. 

 

   ▲ 자주색 꽃이 피는 광대나물

 

   ▲ 봄까치꽃 이라고도 부르는 큰개불알꽃  

  

이렇게 자연의 봄은 순리에 따라 오고가는 것처럼

태공들도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지 못하고,

납회를 마치고 나면 겨울동안 휴면기를 갖고 나서 돌아오는 새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새봄이 돌아오니 휴면기도 끝나고 태공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집안에 있지를 못하고 덩달아 낚시 가방을 등에 메고

초봄 포인트를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 동호회 회장이신 다혜콩콩님

 

오후 들어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현지주민들이나

외지에서 차량을 이용해 찾아오는 태공들의 발걸음은 잦아지고 있으나

입질은 뚝 끈긴 채 고요한 정적만 흐르고 있습니다.

 

이 정적을 깨트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봅니다.

옆자리의 다혜콩콩님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낚시대를 치켜세우고

"냉큼 오랍니다."

 

한걸음에 달려가서 살펴보니 월척급이 수초 속으로 파고 들어간 것 같습니다.

낮 낚시에 월척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간신히 수초 속에서 끌어 내놓고 보니

"헐, 8치급 입니다." 

허탈감에서 오는 얼굴 표정이 묘합니다.

 

   ▲ 기대와 달리 8치급에 난감해 하는 다혜콩콩님

 

오후 3시가 넘어가자 봄볕도 많이 약해지고,

잔잔하던 수면이 북서풍이 불면서 다시 일렁이고 있을 때

오후에 출발한 회원(야생초, 붕어사랑, 아쭈리, 구름다리)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주위가 시끌벅적한 가운데

 

본인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정하고 대를 편성하고 나더니

하나둘 모여들어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이고

오늘 밤낚시에 기대를 걸면서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 이 맛에 낚시 다닌다는 태공들

 

막걸리 한 사발에 목을 축인 회원들의 손놀림이 바쁩니다.

다섯 가지 종류의 떡밥을 배합하고 있는 "구름다리님"

벌써 7치급 한 수를 하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아쭈리님"

바람이 타지 않는 좋은 자리를 잡았다고 미소 짓는 "야생초님"

 

모두다 출발은 좋은 것 같은데

오늘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합니다.

과연 기다리던 월척은 나올까요?

 

   ▲ 떡밥의 달인 구름다리님

 

   ▲ 어복이 충만한 아쭈리님 

 

  ▲ 유일한 왼손잡이 태공 야생초님

 

오늘 하루를 마친 해가 마지막 빛을 내뿜다

매화나무에 붉은 여운을 남기고 서쪽으로 넘어가자

밤이 주는 나 혼자 만의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준비를 서두릅니다.

 

   ▲ 매화나무 가지 너머로 해는 넘어 가고

 

지는 해의 붉은 빛이 반짝이던 수면이

점점 짙어지는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되자

오늘 밤 대물을 노리기 위해 새우로 미끼를 교체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낮에 미리 넣어둔 새우 망을 건져보니

참붕어만 잔뜩 들어있고 새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김빠진 맥주를 마신 기분입니다."

 

   ▲ 대물이라도 입질을 하면 환상적으로 솟아 오르는 캐미불

 

밤이 깊어가도록 입질은 없고,

거기다 기온은 자꾸만 내려가 추워지고,

희망이 절망을 넘어 좌절의 순간에 다다르자

 

건너편에 밤새도록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애꿎은 병원건물을 바라보면서 "너 때문이야" 라고 투덜거리다

내일 새벽을 위해 "좋은 꿈 꿔" 라는 말을 대신하며 눈을 감아봅니다.

 

   ▲ 남들이 볼 때는 아름다운 야경이지만 짜증이 나는 병원 불빛

 

새벽 기온이 얼음이 얼지는 않았지만 손발이 시릴 정도로

밤사이에 강한 바람과 함께 기온도 급속히 내려가

어제 날씨에 비해 초봄에서 초겨울로 널 띄기를 한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도

눈부시고 찬란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짙게 깔린 구름사이로 차디찬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 녹동 대분지 일출

 

무슨일 입니까?

밤새도록 잔챙이 몇 수를 한 붕어사랑님이

아침낚시에도 별 조과가 없자 살림망에 들어있는 붕어를 방생하고

철수한다고 합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기 바랍니다.

 

   ▲ 방생을 하고 있는 붕어사랑님

 

그놈 튼실하게 잘 생겼습니다.

갑자기 터진 입질에 5수 끝에 건저 올린 8치급 붕어 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데 - - - 

 

   ▲ 철수 무렵에 낚은 8치급 붕어

 

비록 씨알은 적지만

짧은 대를 사용해서 그런지 손맛은 좋았습니다.

 

   ▲ 소석과 아쭈리님의 7치급 이상 붕어들

 

회원님들!

다음 출조 때는 막걸리 한 사발에 화전놀이도 즐기고,

월척과 함께 춤을 추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