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얼음 그리고 태공들
며칠째 기승을 부리던 맹추위가 잠시 주춤하는 일요일 아침.
어디를 봐도 겨울잠에서 깨어나려는 생명의 기운은 느낄 수 없고,
바다쪽에서 불어오는 삭풍만 옷깃에 스며듭니다.
내심 기대했던 겨울 햇살이라도 비춰주면 좋으련만
잔뜩 찌푸려있는 회색빛 하늘이
이런 날 무슨 재미를 보려고 물가에 나왔느냐고 비웃는 것 같습니다.
▲ 고흥 거군지(2012.2.5)
저수지 중심과 물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말라버린 갈대와 풀들은 하얗게 얼어붙어 있고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는 금방 눈이라도 내릴 것 같습니다.
▲ 얼음 속에 핀 갈대와 풀
푸른 하늘도 하얀 구름도 없는 건너편 겨울 바다도
하늘을 닮아 납빛으로 우중충하게 흐려있어
어디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구분이 되지를 않습니다.
▲ 한 몸이 되어버린 하늘과 바다
지난밤 추위로 물가에 얼어붙은 살얼음 너머로 찌를 세우고 나니
하늘에서 함박눈이 펑펑 내려
낚시터 주변 정경이 제법 정취도 있고 그럴듯합니다.
한편으로는 전날보다 날씨는 많이 풀린 것 같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 눈마저 내려
갑자기 변한 날씨에 붕어들의 활성도가 떨어 질까봐 걱정이 됩니다.
▲ 과연 얼믐 밑의 붕어는 미끼를 발견할 수 있을까?
찌가 꿈틀거립니다.
오로지 보이지 않는 물속의 붕어와 교감을 할 수 있는 찌에 어신이 나타나고,
태공을 유혹하는 황홀한 찌 놀림이 시작 되면서 서서히 솟아오릅니다.
태공은 이 찌 놀림에 가슴 설레는 무아지경에 빠져들면서
물속의 붕어와 찌를 사이에 두고 불꽃 튀기는 신경전을 벌이다
어깨가 움찔거리더니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이 손목에 역동적인 힘이 가해집니다.
▲ 그렇게 소망했던 어신이 나타난 찌
태공이 붕어보다는 한 수 위였습니다.
얼마나 놀랬는지 먹이를 절반이나 먹다말고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하필이면 차디찬 얼음 위에서 버둥거리다 포기한 것 같습니다.
▲ 얼음 위에서 나뒹구는 붕어
이번에는 제법 큰 녀석이 걸렸나 봅니다.
얼음을 깨고 물속에 넣어둔 살림망이 태공에게 답이나 하는 듯이
큰 입을 벌리고 함빡 웃고 있습니다.
그날 운이 좋든 실력이 좋든 살림망이 터지도록 채워 본 적이 있을까?
빈 살림망으로 돌아오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비록 한 마리일지라도 찌맛, 손맛을 보고 살림망에 넣을 때 느끼는 뿌듯함,
간간히 등지느러미만 살짝 보이면서 유영을 하고 있는 모습에서 느끼는 흐뭇함,
철수 할 때 묵직한 중량감과 펄떡이는 소리에 잔잔한 미소와 함께 느끼는 행복감,
그리고 물속에 담가보지도 못했거나 가벼움 속에서 오는 허탈감,
이 모두가 출조 때마다 겪는 일입니다.
▲ 살림망의 유일한 손님 붕어
잠시 붕어들이 소강상태에 들어 간 것 같습니다.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가고 있고,
태공은 등 뒤로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날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눈보라 속 홀로 맛보는 겨울 정취도 일품이지만
누구도 만들 수 없고 흉내 낼 수 없는
오로지 태공들만이 겨울 낚시와 함께 맛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 무념무상(無念無想)
눈 덮인 얼음위로 무었인지 몰라도 흔적을 남기고 지나갔습니다.
지나갔다기보다는 끌려 온 것 같은데,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던 붕어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 짜릿한 희열과 생사를 넘나들던 길
이런 모습을 보면 행복이 넘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모습으로 웃어 본 날이 얼마나 될까요?
이 맛에 태공들은 낚시를 한다고들 합니다.
되돌릴 수 없는 날들이 가고 있습니다.
행복은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선택이라고 합니다.
하루 일상 속에서 매번 즐거움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 승리감에 만족하는 태공
누가 이 사람들을 말리겠습니까?
겨울이 되면 대부분 태공들은 낚시대를 잠시 접어두고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겨울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포근한 날이면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얼음낚시를,
남부지방에서는 얼음이 얼지 않는 곳을 찾아 물낚시를 즐깁니다.
▲ 하늘이 내린 갈대 이삭에 핀 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