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행기

석양 무렵 가학지에 무지개가 뜨던 날

소석(笑石) 2012. 12. 5. 13:24

 

   ▲ 장흥 가학지

 

오늘은 12월 첫 날 입니다.

저물어 가는 임진년의 아쉬움과 함께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서고 있어

어쩌면 마지막 출조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고르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출조를 강행하였습니다.

 

늦은 오후 4시경 장흥 가학지에 도착하니

꾼들은 하나도 없고 을씨년스러운 겨울 찬바람이 목덜미를 휘감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듭니다.

 

   ▲ 산 밑 포인트

 

바람의 방향을 고려하여 산 밑에 장소를 정한 후 장비를 옮기고 설치하는 중에

서쪽하늘에 무지개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 하고나니

오늘 밤 낚시가 은근히 기대 됩니다.

 

하지만 무지개는 비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비록 내일 새벽 적은 양의 비가 예보 되어 있지만

많은 비가 올까봐 걱정이 됩니다.

 

서쪽에 무지개가 있는 것은 서쪽에 비가 오고 있음을 말하고,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 에서는 대체로 일기의 변화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비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 서쪽 하늘에 선 무지개

 

12월 첫 날이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석양에 물들어 가는 겨울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지는 해가 아쉬워 붙잡아 매어놓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손을 내밀면 집힐 것 같은 지는 해를 잡지도 못하고,

뜨는 해를 막지도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저 바람만 보고 있습니다.

 

   ▲ 가학지 석양

 

저녁노을이 어슴푸레하게 남아있는 시각,

8대의 낚시 대에 캐미 불을 달고 나니

캐미 불 너머 마을 불빛이 오늘 따라 유난히 반짝입니다.

 

오로지 꾼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들만이 즐길 수 있는 멋진 밤풍경 입니다. 

 

   ▲ 가학지 밤풍경

 

밤 시간은 정적 속에서 입질 한번 없이 자꾸만 흘러가고,

늦은 저녁을 김치찌개로 든든하게 먹어서 그런지

초저녁 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견딜 만 하던 날씨가

밤이 깊어갈 수록 기온도 내려가고 바람도 제멋대로 붑니다.

 

겨울밤 추위를 휴대용 난로에 의지한 채 웅크리고 있다 보니

졸음도 오고 일찍이 잠자리에 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 겨울 밤낚시의 필수품

 

갑자기 깜깜한 어둠 속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물소리에 이어

붕어사랑님이 9치 급을 잡았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번 출조 에서도 우리보다 2시간여를 늦게 도착한 붕어사랑님이

9시 40분경 첫 수를 올렸습니다.

 

한겨울밤 불어오는 찬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들어

난로위에 모포까지 덮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캐미 불만 바라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미끼보다는 떡밥에 입질이 들어왔으니

떡밥을 달아 놓았던 3대(2.8, 3.0칸)에 새것으로 갈아 놓고

캐미 불을 응시해 봅니다.

 

얼마 후 10시경 3.0칸 대의 캐미 불이 꿈틀거리다 두 마디 쯤 올리자

호흡은 정지되고, 온몸이 경직된 상태에서 챔질을 하는 순간

대어가 덜컥하고 걸리는 감각이 어깨에 짜릿하게 전해집니다.

 

또다시 겨울밤 정적을 깨트림과 동시에

양쪽에 자리한 붕어사랑님과 아쭈리님이 무었인가를 물어보는 소리는 들리는데

정신없이 안전하게 올려놓고 보니 월척급 입니다.

뒤이어 두 번의 입질이 있었으나 아깝게도 헛챔질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 은빛 비늘이 반짝이는 월척급 붕어

 

어둡던 저수지가 갑자기 환해지는 느낌이 들어

우리가 자리한 뒷산 너머를 쳐다보니 보름달이 떠오르고 달빛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금 시각이 11시경으로 평소와 달리 의문이 들어 찾아봤습니다.

 

오늘은 보름달이 뜨고 나서 3일 째인 음력 18일로,

보름달은 오후 6시경 떠오르고 오전 6시경 지는데,

보름이 지나고 부터는 보름달과 하현달 중간 형태의 달이 뜹니다.

 

달은 대략 하루에 50분 정도씩 늦게 뜨므로 8시 30분경에 이미 달은 떳으나

바로 뒤에 산이 가려있어 이곳에서는 더 늦게 뜬 것 같습니다.

(참고로 하현달에 해당하는 반달은 자정에 떠오르고 정오에 집니다.)

 

   ▲ 소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보름달

 

곤히 자고있는 벽 4시경

우려했던 비가 내리면서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깬 아쭈리님이

비 단속을 하러 나갔다가 들어와 다시 잠이 듭니다.

 

어둠 뒤에서 새벽이 밝아오고 있지만 

비는 계속 내리고 있어 나갈까 말까 난감해 하고 있는데

새벽낚시를 체념한 아쭈리님이 아침을 준비하고 있고,

김치찌개인지, 곰탕인지 냄새가 보글 보글 끓으면서 구수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소와 돼지고기로 만든 곰탕김치찌개를

두 그릇이나 맛있게 먹고 나니

아침이 어둠에서 천천히 깨어나고 있습니다.

 

   ▲ 찬바람이 감도는 가학지의 아침

 

찬비가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겨울 아칭입니다.

아침 낚시를 위해 비탈길을 내려가던 중 갈색으로 변해버린 풀 섶에서

비를 흠뻑 맞은 구절초가 쓰디쓴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가을에 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가장 늦게 피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초라한 몰골을 보이고 있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 생명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구절초

 

자리에 도착하니 새벽에 내린 비에 젖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낚시 대와 살림망이 눈에 들어옵니다.

풍성한 살림망이 아닌 달랑 한 마리 붕어만 들어있는 살림망이

추운 겨울 날씨 만큼이나 싸늘합니다.

 

   ▲ 언제쯤 저 살림망을 가득 채워볼까?

 

약한 비는 오락가락 하지만 물색이 점점 좋아지니

마음이 신숭생숭 한 상태에서 8대의 낚시대 중 4대에는 제법 쓸 만한 새우를 달고,

3대는 떡밥을, 1대는 지렁이를 달고 기다려 보지만 입질은 없습니다.

 

   ▲ 원망스러운 겨울비

 

비구름도 물러가고 비가 그치자

3명의 조사가 한 곳에 모였지만 쪽한 대안은 없고, 

비에 젖은 텐트 등이 마르는 동안까지만 더 해보기로 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 낚시를 하다보면 그런 날도 있는 것이지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저 멀리 수면을 헤집고 노는 물오리 떼들의 유영이 한가로운 것처럼

나 역시 찌들이 조용하니 한가롭기만 합니다.

 

문득 어제저녁에 낚은 붕어 크기가 궁금합니다.

어둠속에서 눈짐작으로 볼 때는 월척급 이었는데 하면서

아쭈리님 게 물어보니 29.5cm라고 합니다.

 

계측결과 정확히 29.5cm입니다.

붕어사랑님이 "하 프로"라고 부를 만합니다.

 

   ▲ 소석님의 29.5cm 붕어

 

   ▲ 붕어사랑님의 26,0cm 붕어

 

서쪽 하늘에 선 무지개를 보면서 좋은 조황을 기대했지만

준척급 한 마리에 허탈한 심정으로 낚시장비를 거두고 나니

겨울 햇살이 반짝입니다.

 

다시 낚시장비를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지만

아쭈리님이 온갖 정성을 다하여 만든 마지막 오찬인         

곰탕김치찌개에 라면을 넣은 곰탕김치찌개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아쉬운 발걸음을 집으로 돌립니다.

 

   ▲ 장흥 해창지에 떠있는 연꽃도 지고 씨앗도 떨어진 씨방